2007년 7월 10일 화요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라(5)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라(5)롬3:21-24지난 주 수요일(19일) 갑자기 영국 친구로부터 태풍에 피해는 없느냐고 묻는 안부 메일이 와서 갑자기 영국이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궁금해 졌습니다. 내가 없는 영국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제가 영국에서 즐겨보던 데일리메일이라는 신문의 웹 사이트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이 신문의 사회면 톱 기사를 본 순간 저는 저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내가 영어 문장을 잘못 이해했나 싶어 사전을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제 눈이 틀리지 않았고, 또 제가 잘못 이해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A teenage girl who has become Britain's youngest mother of triplets has said it was the 'best thing' she has ever done. Natalie Scanlan, from Stalybridge, Greater Manchester, gave birth to identical daughters Maddie, Ellie and Lilly in April this year, aged just 16. She said: "They're the most precious things in the world and it's the best thing I've ever done."나탈리 라는 16세 소녀가 영국 최초로 3 쌍둥이를 지난 4월, 출산 했는데 우리 같으면 수치스럽고 창피하여 고개를 들 수 없을 텐데, 글쎄, 이 세 쌍둥이 10대 미혼모인 나탈리는 말하기를 “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이며,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동안 내가 한 일 중 가장 위대한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놀랄 일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지난 9월 23일 영국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의하면 젬마, 제이드, 나타샤 세 자매 이들 모두는 작년 2월, 11월, 그리고 12월에 모두 10대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나이가 제일 어린 막내 젬마가 이 세 자매중 제일 먼저 아기엄마가 되었는데, 이때 젬마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습니다. 11월에 아이를 낳은 맏 언니 나타샤는 16세, 12월에 아이를 낳은 둘째 제이드는 14살이었습니다. 이 세 자매는 두 번 이혼한 전력이 있는 어머니 줄리 애트긴스(38))와 함께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방 3개짜리 카운셀 하우스(공영주택)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신사의 나라, 해가 지지 않은 나라, 19-20세기 세계를 향해 복음을 수출했던 대영제국이 이제는 미혼모의 천국이 되었고, 마약 중독자와 부랑자들로 거리는 넘쳐나고 있습니다.정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 50년에 헤로인 중독자는 약 1000명 정도 이었으나, 지금은 경찰서에 붙잡혀 들어오는 5명 중 1명은 마약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영국에서 복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좀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데일리메일이 지난 97년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16세 이하 교회 다니는 청소년 중 8명 중 1명은 마약을 하고, 3명 중 1명은 술을 마시며, 50%이상은 18세 이상만 볼 수 있는 성인물을 보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통계이니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이 정도라면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그 시대를 가름하는 잣대입니다. 사회가 아무리 부패해도 교회가 정신을 차리면 그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면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힘을 잃은 결정적 원인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요,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데서 기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 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광 돌리는 존재로 지으셨다고 하니까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신 밖에 모르는 욕심쟁이, 인간을 꼭두각시 취급하는 무지막지한 분 아니냐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말은 칭찬 듣는 자녀가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받는 존재,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사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즉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칭찬을 얻는 일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후 ‘참 좋다!, 참 아름답다!, 참 멋있다!’ 고 감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 중 최고의 걸작품은 다름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과 찬양하는 일을 방해하고, 또 죄가 하나님께 칭찬받고, 위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컨대 우리 집에 아이 하나가 태어났습니다. 사랑받고 칭찬받고 자라나야 할 이 아이가 날마다 사랑과 칭찬 대신에 욕만 먹고 매만 맞고 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그 삶이 보람이 있겠으며, 행복하겠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으로 자라나겠습니까?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하나님의 사랑을 먹으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하나님의 칭찬과 도우심을 받아 행복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사람이 이렇게 복되게 사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죄를 제일 미워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보면 충돌하시고 죄를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인이 행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받고 칭찬을 받으며 살아야 할 사람이 죄인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대신에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고 그 결과 심판과 사망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창6:3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했고, 창6:5-6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칭찬받고 사랑받아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근심케 하는 존재로 변했다는 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동거 할 수 없어 사람을 떠난 결과 모든 사람이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런 고통 가운데 버려두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특별히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이 믿을 때 즉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했을 때 영광을 받으셨습니다.이적과 표적을 행하신 목적은 믿게 하기 위함예수님은 이 땅에 게신 동안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2:11에“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했고, 요11:40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주 목적 가운데 하나는 믿음이 없는 이 세상에 믿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 할 때 영광을 받으시고 믿는 자들에게 당신의 영광 즉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십니다. 예수께서 왜 많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셨습니까? 이유는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표적과 이적을 보았음에도 믿지 못했던 도마를 위해 자신의 몸에 창자국과 못 자국을 보여 주시면서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보고 믿는 자 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했습니다. 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요1:14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예수님은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 아담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잃어버린 자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끌림 받아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사람을 살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칭찬과 위로를 받는 성도들이 됩니다.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막2:5)막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병을 가지고 나왔던 사람들은 병만 고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은 잠시 나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병 고침과 구원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오늘날에는 병원에 가면 어지간한 병은 다 낫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육체의 병만 일시적으로 나은 것뿐입니다. 믿음은 죄인을 의롭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라고 했습니다. 모든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즉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각종 기적과 이적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마17:20)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막9: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가르치셨고, 제자들이 믿음 없는 자와 같이 행할 대 이를 책망하셨습니다. 막9장에 보면, 어떤 아버지가 간질 들린 아이를 제자들 앞에 데리고 왔는데 고치지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마 17:17, 막9:19)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우리는 왜 고치지 못합니까?”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17:20)고 대답 하셨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도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 16:14)고 했습니다. 항상 칭찬하기를 좋아하셨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꾸짖으셨던 유일한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언제가 한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탔습니다. 그리고 엄마 이거 “엘리베이터지”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리지도 않는 여러 층을 누른 것입니다. 그때 옆에 있는 엄마가 “너 그러지 말랬지!”하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혼을 내 줘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하는 말. “엘리베이터가 뭐야 다시 해봐! (혀를 둘려가며)엘리베이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영어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가 바르게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교육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근본을 위해서 교육하시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단순히 히브리어, 아람어 발음이 좋지 않다고 꾸짖으신 것 아닙니다. 그런 것을 교육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핵심 교육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 눅 12:28)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주님은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마8:5에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때 한 백부장이 나왔습니다. 백부장이란 자기가 거느린 군병이 100명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병 때문에 주님께 나아와 고쳐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7절에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내 집에 주님이 오시는 것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하면서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 부하들도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간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면 하인의 병은 고쳐질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눅7:9)고 칭찬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려면믿음을 가지려면 주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그분에게 먼저 구해야 합니다. 제자들도 주님께 구했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눅 17:5)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10:17) 말을 통하여 믿음을 보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주님의 언어 습관을 본 받으라(요9:1-3)요9:1-3에“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또 요11장에 보면,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후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요11:4)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말은 언제나 믿음의 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 긍정적인 말,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을 하셨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마음은 믿음으로 충만했고, 사랑으로 충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10:9-10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고, 에수께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입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합니다. 겉으로 믿음이 있는 것 같아도 말을 들어보면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군수군하는 것을 싫어하셨고, 바울은 이를 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 가지고 믿음의 말을 하며 믿음으로 도전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또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칭찬과 상으로 보답해 주십니다. 말에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음을 믿으라. (약3:2)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뇌 속에는 수많은 신경들이 모여 있는데, 그 중 제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경이 언어 중추라고 합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어!”라고 말하면, 모든 신경들이 그 메시지를 받아서 약 약해지도록 준비하자! 라고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던 사람이 “나는 능력이 없어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면 당장 모든 신경들은 똑같이 선언하고 반응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조사 결과는 매우 성경적입니다. 약3:2에“혀는 신체의 작은 부분이지만, 온 몸을 굴레 씌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전 이 세상은 공허하고 혼돈 햇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명령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약 3:3은 혀를 지배하는 것은 온 몸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 수근수근 남의 말, 원망 불평, 시기 질투의 말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 대신 긍정적인 말,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자신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성경의 언어에 점령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믿음의 말, 건설적이고, 진취적이며, 생산적 그리고 승리적인 말로 우리 심령에 가득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성경을 정독하고 일주일에 한 두 성경 구절을 외워 부정적이거나 불평 원망이 생길 때 그 말씀을 소리 높여 말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들어간다.(롬10:10)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마음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그의 말씀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시인하는 것은 에수님의 임재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0:10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마18:18에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를 통하여 마귀에게 묶인 것들을 풀고 은혜와 복을 명령 할 수도 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힘들게 재미없이 예수 믿으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전인적 구원입니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칭의의 구원은 물론 이거니와 성령을 통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구원, 각종 문제와 질병으로부터 해결과 치료받는 구원, 각양의 은혜와 복을 받아 세상을 정복하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구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영원한 천국에서의 영생복락의 구원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 이 말씀이 나의 삶 속에서 이뤄지기를 믿음으로 선포하고 선언 할 때 우리가 표현하는 믿음의 말을 통해 예수님은 역사해 주십니다.지난 2005년 4월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연재된 서울대 의대 해부학 이왕재 교수의 간증을 잠시 소개합니다. 1996년 12월21일 지방에서 친구들과 토요일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나밖에 없는 6세 딸아이 ‘하나’가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고 경위는 딸이 주차된 차 앞에서 운동화를 고쳐 신으려고 허리를 굽힌 순간 우회전하던 차가 미처 딸아이를 보지 못하고 그냥 치어버린 것이었습니다.딸아이는 사실 결혼 후 9년 동안의 불임기간을 거쳐 어렵게 시험관 수정을 통해서 얻은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를 얻을 때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가 기도를 해주었으므로, 우리는 그 아이를 얻은 것은 우리 가족은 물론 많은 분들의 기도의 결과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딸을 중환자실에 놔두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나님 앞에 밤새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 1월4일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지 꼭 2주일이 되는 날 주치의인 서울대 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님이 “이 선생, 오늘 퇴원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해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딸이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경에 있었던 것이 며칠 전인데 벌써 퇴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박 교수님은 이미 심장 간장 폐 등의 상태 등을 모두 점검했는데 큰 문제가 없으니 퇴원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병실을 떠나셨습니다. 나는 간장의 발생을 강의하는 해부학 교수입니다. 2주전에 자동차 앞바퀴에 짓이겨진 간장이 2주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되는 모습을 내게 생생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은 생명창조의 과정을 어리석은 자에게 재연해주신 것이었기에 지금은 더욱 겸손히 주님을 섬기며 전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 여러분!주님은 불가능이 없는 분입니다. 주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므로 칭찬과 위로를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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