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0일 화요일

믿음의 능력(1)

믿음의 능력
롬3:21-31

여러분 엔테베 작전이란 말 들어 보셨는지요? 한때 꾀나 유행했던 말이었는데, 이 엔테베 작전이 생겨난 배경은 이렇습니다. 1976년 6월27일, 그리스 아테네 공항을 떠난 에어 프랑스 비행기가 아랍 테러리스트들에 의해서 공중납치(hijacking)를 당했습니다. 이 비행기 안에는 102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이들은 곧 인질로 잡혔습니다. 이 비행기는 당시에 이디 아민이 통치하고 있던 우간다의 수도 공항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이에 당시 라빈 수상이 이끌고 있던 이스라엘에서는 즉각적으로 긴급 내각 회의를 열어 비밀스럽고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당시 30세의 요나단 네탄야후 대령이 이끄는 특별 작전 요원들이 6대의 비행기에 분승하고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네 대의 화물 비행기, 두 대의 보잉 707 비행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한 대에 주로 전투 요원들이 탔고 나머지 비행기들은 부상자들의 치료 및 후송을 위해서 준비되었습니다. 그들은 레이다망을 피하기 위해서 저공비행을 해서 우간다의 수도 공항에 안착 후 불과 15분~20분 내에 모든 작전은 끝났습니다. 인질들을 구출하고, 이들은 유유히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세 명의 인질이 희생되고 작전 요원 한 사람이 희생되기는 했지만, 이 작전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구출 작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한 십자가 작전은 이 엔테베 작전보다 더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신 예수, 성자이신 독생자 예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에 얽매여 있는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 작전은 완벽하게 적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습니다. 마귀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즉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죽으시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구원의 세계, 축복의 세계,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입니다.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믿음은 ‘하나님에게만 구원의 소망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 보니 두 남편을 죽이고 친 어머니 친 동생마저 눈을 멀게 해서 보험금을 타낸 엽기적인 한 여자가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성경에도 보니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역하여 죽이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내, 남편, 아들, 딸마저 나에게 등을 돌린 세상, 이런 세상에서 누구를 믿을 수가 있겠으며 또 누구에게 자기의 구원을 호소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만 신뢰할 대상은 아닙니다.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도 나를 도우시는, 나를 붙드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오직 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의논하며 나의 모든 것을 털어 놓고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분이 베푸신 은혜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분의 자녀가 되고, 이 예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사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 할 때, 우리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유는 이 믿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큰 선물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1. 믿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의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

⑴ 칭의(의롭다고 인정해 주는) 능력
본문23-26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죄를 간과하셨다”는 말은 죄가 많지만 없는 것처럼 넘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셔서 그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많은 인간이지만,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6-8). 죄가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가리우심을 받아서 그 죄를 하나님이 하나도 인정하지 않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⑵ 선물로 받은 구원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롬3:27-28) 우리의 믿음은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요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엡 2:8,9).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수단이므로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믿음 자체를 공로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무엇인가 자랑할 것이 있도록 만드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불하신 모든 대가를 감사함으로 받고 기쁨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⑶ 차별이 없는 구원모든 믿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 없이 주시는 구속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율법 외에'라는 말은 '율법의 행위' 외에 라는 말입니다. 예수 안에서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추구하였던 유대적 종교의 한계를 벗어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의미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⑷ 전인적인 구원 예수님은 인간의 영혼만 구원하려고 온 것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인간의 육신적인 질병만을 고쳐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육체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를 구원하고 치료하는 전인적인 구원이 목적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는 인간의 삶 속에 풍성한 공급을 주실 뿐만 아니라(요 10:10)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병들어 버린 영혼과 마음과 육체까지도 온전케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신의 치유 사역을 행하실 때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죄 사함의 선포를 하시었고 뿐만 아니라 다시는 가서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죄를 범하지 말 것을 경고하셨습니다(눅 5:20; 요 8:11).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는 인간을 온전하게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전인적인 구원입니다.

2. 율법을 굳게 세우는 능력

⑴ 율법이란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히10:1) 모세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율법시대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교훈과 의식속에서 날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제사를 드리며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행동 규범 이었습니다.

⑵ 율법의 존재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첫째. 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율법을 다 지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셨는데, 오직 이분만이 모든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지키셨을 뿐 아니라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킨 것입니다. 둘째.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합니다.(롬3:20) 그리고 세 번째로 율법은 우리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합니다.(갈3:24) 왜냐면 율법을 지켜 구원받아 보겠다고 노력 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노력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⑶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마5:16) 그 율법은 믿음으로 완성됩니다. 오늘 본문 31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믿음은 율법 즉 행위를 굳게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안 믿기 때문에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주일날 하루를 일하지 않고 안식을 누리더라도 하나님께서 먹여주시고 공급해 주신다는 믿음이 없다면, 주일 성수라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내의 행복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남편에게 순종하는 율법의 행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기도라는 행위를 계속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더라도 다시 살리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을 통해서 그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아질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이삭을 바칠 수 있는 행위가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근거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위를 힘 있고 능력 있게 만듭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천입니다.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커질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행위를 굳게 세우는 일을 합니다.
3. 믿음은 화목케 하는 능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화목 제물로서 모든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죄의 장벽,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는 혈통 장벽, 문명국과 미개국 사이의 문화 장벽, 남여사이에 있는 성적 장벽, 어른과 아이 사이에 있는 나이장벽까지 모든 것을 허무시고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화목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 믿음이 있는 교회는 화목한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가 화목한 교회입니까?


⑴ 가족 같은 교회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바로 가족임을 역설합니다. 예컨대 갈6;10에 "착한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먼저 해야한다"고 했을 때 믿음의 '가정'이란 말이'가족'(family)이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엡2:19에는 "너희가 더 이상 외인도 아니고 손도 아니라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 또 딤전3:15에서는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집은 영어로 Household of God, 즉 ‘하나님의 가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와서 성도들을 만날 때 가족임을 느끼느냐? 하는 점입니다.


⑵ 바른 '코이노니아'가 있는 교회
코이노니아는 삶의 나눔, 삶의 참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코이노나아가 이뤄 지려면 자기의 삶을 여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자기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교제가 우리에게 치유와 위로, 격려 더 나아가 변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참되고 역동적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생활 즉 신약 성경적 코이노니아를 드러내 보일 때에만 비로소 온전히 그 교회 된 기능을 발휘하고 교회로 하여금 세속적인 세상에 성공적으로 침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힘이 바로 이 교제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⑶ 형제의 연약함을 용납하는 교회
건강한 가족은 상처주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상처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작은 위기에도 무너지지만 나눔의 사랑은 크고 깊은 뿌리를 내립니다. 가족은 기쁨과 믿음과 사랑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파하고 미워하다가 화해하고 용서하고 상처까지 끌어안아야 비로소 가족인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바로 형제와 이웃의 연약함을 담당하는 연습을 하며, 서로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용납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본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화목한 교회가 되려면 큰 그룹으로 모여서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 창립 6년 만에 구역 예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구역 예배는 이전에 드렸던 구역 예배 와는 좀 다른 차원에서 운영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구역 모임에는 예배, 성경공부, 기도, 찬양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구역 모임의 본질이 아닙니다. 구역 모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구역 모임의 본질은 화목 즉 하나 되는 것입니다. 혈통을 나눈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과 사랑이 있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복, 즉 믿음의 위력은 죄인을 의롭게 만듭니다. 내 죄가 하나님 앞에 가려지는 복을 받고, 전인적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율법을 굳게 세워 자신 있게 행동하도록 돕는 복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서로 서로를 용납하고 하나 되고 화목하여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 되어 승리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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