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0일 화요일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하려면(3)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하는 법(3)본문/고전10:1-11. 민17:1-11. 설교:임두식목사 지난 1998년 2월 3일 오후,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여인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Karla Faye Tucker(카라 패이 터커)로서 "1983년 6월 어느날 밤 남자 친구와 함께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어느 집에 침입하여 강도행위를 하려다가 남녀 두 사람을 손도끼로 살해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에 복역 중 기독인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교도소 선교를 하는 Dana Brown 과 옥중 결혼을 하였으며 교도소 내에서 형이 집행될 때 까지 다른 수형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여인입니다. 그녀의 변화된 삶은 「감옥생활에서 찬송생활」로 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이 여인은 남편을 수시로 바꾸며 살던 엄마는 그녀가 10살 때 아주 이혼을 했고 그때부터 그녀는 배다른 언니 둘과 살게 되었습니다. 언니들은 엄마의 영향을 받아 마약을 하였는데, 그때 언니들은 마약 중독자들과 사귀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언니들의 친구 중 "반디도"라는 모타사이클 클럽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성도착자들 이었습니다. 하루는 언니들은 집에 없자, 그들은 나이 어린 그녀를 모타싸이클에 태우고 데려가 아편을 맞춘 후 성 노리개로 삼았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그녀는 10대 초반에 마약 중독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텍사스 교도소 당국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녀는“도른튼 가족과 딘의 가족(피해자)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화평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가야, 사랑해. 론, 내 대신 페기를 안아줘요. 모든 사람이 내게 그렇게 잘해 주었어요. 당신들 모두 무척 사랑해요. 이제 나는 예수님과 얼굴을 맞대면하게 됩니다. 배게트 간수님, 정말 감사해요. 나에게 그렇게 잘 해 주셨지요. 당신들 모두 무척 사랑합니다. 당신들도 그곳에 오게 될 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에요. 당신들을 기다리겠어요.” 오직 죽는 것 외엔 소망이 없던 그녀가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 희망이 없는 감옥에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내야 할 줄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죽는 순간가지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다른 죄수를 전도하는 찬송생활, 감사생활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볼 때,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원망과 불평꺼리가 많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10절)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면서 원망할 일이 생기고 불평 할 일이 생겼을 때 일단 원망 불평을 쏟아내지 말고 왜 불평의 근원을 제거하여 복되게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 다 할 때 까지 70년 혹 80년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은혜 가운데 한 평생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고통 가운데 죽지 못해서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주 동안 광야와 같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좀더 은혜롭게 살 수 잇는지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지난주에 이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좇아 은혜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 할 수 있습니까? 1.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 때 은혜롭게 통과합니다.2. 순결한 삶을 추구 할 때 은혜롭게 통과합니다.3. 주님을 시험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 할 때 은혜롭게 통과 할 수 있습니다.4. 원망을 그치고 권위에 순복하면 은혜롭게 통과합니다.본문 10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우리가 읽은 대로 민16장과 17장에 나오는 고라당의 반역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말씀입니다.먼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개요는 이러합니다. 민16:1-3에 보니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이라는 사람이 족장 250명을 유혹하여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구테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반항의 내용은 시기와 질투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세 가지 사건을 통하여 그 반란의 주모자들과 동조자들을 징치하고 아론의 지도권을 확보해 주었습니다. 그 하나는 땅이 입을 열어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에게 속한 그 가족들을 삼키게 했습니다(민16:31)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반항운동에 앞장섰던 250명을 태워 버렸고(민16:35), 그 세 번째는 반항운동을 따라가던 백성들에게 염병을 보내어서 147000명을 죽게 하였습니다.(민16:47-48) 참으로 무섭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가라앉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한 가지지 분명한 표징을 주셨습니다. 12지파의 족장들로 하여금 각기 지팡이 하나씩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각 지팡이에는 각 지파의 이름을 쓰도록 하여 지팡이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게 했습니다. 그 후에 그 12개의 지팡이를 회막안에 있는 증거괴 앞에 두면 그 다음날 하나님이 택한 지파의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그 다음날 모세가 회막에 들어 가 보니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열려 있었으나, 다른 지팡이는 어제와 동일했습니다.(민17:1-7) 이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찌니라”(민17:10)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이 말씀은 곧 원망을 그치고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가 누구 인지 바로 알고 그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하는 방법은 지도자의 지도를 받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은혜롭게 통과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고 섬기며 인도하는 지도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고, 둘째 그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잘 따르라는 것입니다. 광야를 은혜롭게 인도 할 참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민17:10에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찌니라” 고 했습니다.이 표징은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맺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택하신 대 제사장은 아론이라는 사실을 모든 백성 앞에서 확실히 증명해 주신 표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가져다가 간직하고 패역한 자들에게 표징이 되게 하라고 함으로써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거울이 되게 하였습니다.(고전10:11) 이 표징은, ① 아론의 지팡이에 돋은 움입니다. 이 움은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나온 새 싹을 말합니다. 그루터기가 죽을 수 없어서 다시 솟아나는 생명의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움은 옛 사람과 그 행위 그리고 그들의 죄악을 잘라버린 십자가를 통하여 새롭게 돋아나는 에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입니다. ② 지팡이에 돋은 순이 표징입니다. 순은 식물의 싹을 말합니다. 순은 약한 것입니다. 순은 연합니다. 순의 힘은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속에는 생명의 요동함이 있습니다. 이 순에서 줄기와 가지가 잎과 꽃과 열매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순은 생명의 표징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연한 순 같다고 했습니다.(사53:2) ③ 아론의 지팡이에 핀 꽃이 표징입니다. 꽃은 현화 식물의 생식기관입니다. 꽃은 아름답고 향기가 그윽합니다. 꽃은 벌과 나비를 부릅니다. 그랴서 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쁘게 합니다. 춤추게 합니다. 노래하게 합니다. 이 꽃은 에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에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에 핀 백합화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향하여 풍기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은 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한 것입니다. ④ 아론에 지팡이에 열린 살구 열매가 표징입니다. 열매는 시작인 동시에 결과이기도 합니다. 열매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새 생명의 시작이 되고 꽃이 떨어진 후에 남은 열매는 그 식물의 결과입니다. 열매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열매는 씨입니다. 열매는 종자입니다. 열매는 양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 되셨고, 생명의 양식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 몸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했습니다.(요6:55)우리는 이 예수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의 몸을 성전 되게 하셨습니다.(고전3:16)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심령 안에, 우리의 몸 가운데 표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징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종의 형상을 입으시고 말구유에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표징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겸손과 온유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표징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날마다 우리를 권면하십니다. 감동하십니다. 예배하며, 기도하며, 섬기고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섬기라고 하십니다.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보고 더 이상 의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였듯이 우리 속에도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표징, 구원의 표징은 우리로 하여금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표징 때문에 교회에 온 것입니다. 우리 속에 거하신 성령은 날마다 우리에게 더 이상 네 맘대로 살자말고 네가 하고 싶은 말 하지 말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우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표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순종하며 배우며 섬기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이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일하시므로 그들을 인정하고 따르라 고라의 일당이 반역을 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만에서 비롯된 시기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민16:3에 보니“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라고 했습니다. 고라 일당은 모세와 아론이 지나치게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아론과 및 그의 후손들에게만 제사장 직이 부여 된 사실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 소속인 고라는 아론의 종교적 통솔권을 탐을 내었고, 루우벤 지파 소속인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정치적 지휘권을 욕심을 내었습니다. 결국 이들의 요구는 정치 종교적 지휘권을 자기들에게 내어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생각에 250명의 족장들이 동의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다수의 힘을 빌어 구테타를 꾀한 것입니다. 자기들도 모세나 아론에 비해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 가지 몰랐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지도자로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나 국가를 직접 다스리지 않고 백성들 가운데 지도자를 세워서 통치하십니다. 백성들이 지도자와 마음을 합하여 일을 할 때 국가와 교회는 부흥되고 발전합니다. 또 위기를 만나도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 해 낼 수 있습니다. 이태리인은 천년 로마의 영광을 불행히도 변방 고트족 출신의 오토 아키르에게 476년 에 빼앗긴 후 통일 국가의 주인으로 거듭나기까지 꼬박 14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태리는 안으로 제후들이 난립으로 사분오열 되어 있었으며, 밖으로는 유럽을 삼분할 하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독일 등 열강의 노골적인 방해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어부 출신 가리발디라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당시 이태리 젊은이들을 향하여 "조국은 여러분을 부르고 있다.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칠 용기가 있는 젊은이는 앞으로 나오라." 외쳤습니다. 이때 한 청년이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다면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무엇입니까?" 가리발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보상은 있다. 여러분들이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다면 총에 맞아 불구가 되는 보상을 받을 것이다. 혹은 죽음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헌신으로 조국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목숨을 조국의 자유와 맞바꾸겠다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된 천인대를 이끌고 1860년 제노바를 출발하여 배편으로 시칠리아의 마르살라에 상륙한 후 성공적으로 해방 전쟁을 수행하였고, 승승장구하던 가리발디는 나폴리에 입성하여 부르봉 왕조하의 나폴리·시칠리아 왕국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태리 남부 전체를 당시 사르데냐 왕국 에마뉴엘레 2세에게 헌납함으로써 1861년, 로마와 베네치아를 제외한 반도 전체의 1차적인 통일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후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베네치아를 얻을 수 있었으며, 1870년에는 프로이센(프러시아)·프랑스의 보불 전쟁을 틈타 프랑스군의 보호 하에 있던 로마를 병합하게 되어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가리발디가 이태리인들에게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는 가리발디가 통일 후 대권을 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위의 간곡한 요청도 물리친 채 왕 앞에서 “나는 통일 조국 이태리의 권위에 복종합니다.” 라고 말하며 조국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쳤고 이제 이루었기에 더 이상 욕심이 없다고 스스로 물러나 조용히 여생을 해변에서 보냈습니다.성도 여러분! 지도자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바른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를 살리기도 하고 잘못된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의 주관이신 하나님께서 골라 뽑아 쓰시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와 아론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운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기에 백성들에게 100% 만족을 주는 지도자는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별히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 맘대로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백성들을 통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었고,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잘 순종하도록 돕고 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다툼은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고 모두를 고통에 빠뜨립니다. 잘난 체 하는 사람이 많은 곳 일수록 시끄럽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아무리 큰 나라도 대통령은 한분입니다. 비행기에도 기장은 한 사람이며, 자동차 한대를 두 사람이 동시에 운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요 법칙입니다. 교회는 주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인정하고 따를 때 부흥하고 평안합니다. 그러므로 광야를 잘 통과하려면 지도자를 인정하고 잘 따르는 것입니다. 겸손히 지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과 은혜를 세우신 지도자를 통해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내리 실 때 당신이 세우신 지도자를 통해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그 대신 복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민17:10에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찌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표징을 주신 것은 이 표징을 보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반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순전하고 순결한 백성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순종하는 백성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 광야로 이끌어 내신 것입니다. 내 맘대로 잘 될 때 순종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러나 내 맘대로 뭔가 되지 않을 때 순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어려움을 경험케 하신 것은 어려운 가운데에도 인내하며 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전체를 통하여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화를 면 할 수 없게 된다고 반복 도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5:10)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5:2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28:2)......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므로 오늘날도 순종하는 성도들에게는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광야는 내 맘대로 하면 망하는 곳입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순종하는 것만이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순종을 훈련하는 장소입니다. 순종으로 복을 누리는 곳이 광야입니다. 죽지 않고 살며, 사는 동안 복 받는 길은 오직 순종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후 지금까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은혜를 베푸실 때 언제나 당신이 세우신 지도자를 통해 행하셨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교회를 통하여 주의 종을 통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위에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잘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 렐 루 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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