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10일 화요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라(3)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라⑶
본문 / 롬3:21-23
1944년 8월 소련이 루마니아를 침공 할 당시 루마니아 전역에 공산주의자들은 단지 750명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키가 작달막하고 입술이 두툼한 전직 제화공 차우세스쿠도 있었는데, 그는 2차 대전 중 내내 교도소에서 보내다가 막 석방된 상태였습니다. 그는 탁월한 예견력을 인정받아 공산당 청년연맹의 총 서기로 임명받았습니다. 소련이 진주한 이후 공산주의자들은 바퀴벌레들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반대세력을 제거해 나갔습니다. 수년간에 걸쳐 백만의 학생, 농부, 신부, 목사들은 투옥 되었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은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한편 차우세스쿠는 당내 서열이 꾸준히 성장하여 마침내 1965년에 당 총서기가 되었고, 나중엔 대통령이 되어 당과 군을 확고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루마니아는 동 유럽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가졌으나, 차우세스쿠는 국민들은 톱밥석인 빵을 사기위해 줄을 서서 떨고 있는 동안 정부는 대부분의 식량을 외국으로 수출해 버렸습니다. 고기, 버터, 설탕, 식용유, 밀가루는 엄격한 배급제에 의해 분배 되었고, 체계화 운동이라는 명목 하에 수천 개의 시골 마을을 몰아내고 동물 사육장 같은 저질 아파트를 지어 추운 겨울에도 중앙난방을 통해 10도만 유지하게 했습니다. 1주일에 하루 온수를 공급했고, 전기 역시 배급제로서 가정에서 사용토록 허용된 가장 밝은 전구는 40와트였습니다. 국가 노동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아래 가정마다 자녀를 5명씩 낳게 해 수많은 유아들을 영양실조로 죽게 만들었습니다. 국민들이 이렇게 짐승 같은 생활하는 동안 그의 부인 엘레나의 생일파티는 마리 앙트와네트의 파티보다 더 화려했습니다. 세 종류의 철갑상어요리, 거위 간 요리, 송아지 구이, 돼지 요리, 사슴고기. 구운 칠면조 요리, 코니쉬 싸움 닭 요리, 바다 가재 요리, 개구리다리 요리, 훈제 연어, 세 종류의 송어 요리 등으로 배를 채우며 비만을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1989년 12월 22일 성난 군중들의 손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 된 후 죄 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엘레나가 죽은 후 그녀의 침실에서는 앞 축과 과 뒤축에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그녀의 신발이 발견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차우세스크 부부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잃어버린 짐승 같고 벌래 같은 사람들의 단면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형상과 그 영광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특별히 차우세스쿠의 통치기간 동안 가장 탄압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소유한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이들의 협박과 공갈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 헝가리 출신 라스즐 토케스라는 개혁교회의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토케스 목사는 1987년 헝가리 접경지역에 있는 소 도시 티미소이라 중심부에 위치한 헝가리 개혁 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각종 위협에도 불구하고 전도하며 전에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심방하여 부임 당시 50명이던 성도가 2년 만에 5000명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무너진 교회를 수리하여 제법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에 비밀경찰의 협박은 집요하게 계속 되었고, 1989년 8월 토케스목사는 헝가리 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차우세스쿠의 체계화운동을 비난하자 국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빵 배급을 중단했고, 차우세스쿠의 사주를 받은 비밀경찰들은 그의 집에 들어와 칼로 찌르고 때린 후 1989년 12월 15일 까지 집과 교회에서 추방한다는 명령을 발표했습니다. 12월 15일 비밀경찰은 토케스 목사를 강제로 추방하려 했으나, 이 사실을 안 성도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토케스목사의 집을 인간 방패로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가브리 라는 소년이 켠 두개의 촛불을 기점으로 하여 도시 전체가 시위하는 시민들이 켠 촛불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당황한 당국자들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 하여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으나 시위대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마침내 12월 22일 루마니아는 자유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은 이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갈등도 있고 때론 어려움도 만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광야에 있기 때문입니다.(다음주에는 광야를 은혜롭게 통과하는 법에 대해 말씀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광야는 시험이 많은 곳입니다. 광야는 혼자 지나기란 매우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른 교회는 어떤 환난도 이겨냅니다. 영광을 히브리 말로 카보드라합니다. 이 말의 카베드라는 동사에서 나왔는데, 본래의 뜻은‘무겁다’,‘중량이 있다’입니다. 이 말은 당시‘존중하다’,‘공경하다’의미를 가지고 쓰였습니다. 이를 하나님께 적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하나님을 가장 존중히 여기며 귀히 여겨라’ 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라”는 말씀의 뜻은 지금까지 사람이 타락하여 모든 피조물로부터 멸시와 천대 그리고 무시를 받던 인간이 이제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귀중히 여김을 받는 존재가 되라는 뜻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 창1:26)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가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은 곧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고 우리가 무시당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멸시당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라는 말은 귀중히 여김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귀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의 말은 무겁게 느껴져 영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 할 실 때 그 분의 말 한마디는 영향력이 있었고, 그 분의 행동 하나 하나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분의 삶 전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 마지막에 인간까지 다 창조하시고 그동안 창조하신 모든 것을 돌아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창조하신 하늘과 땅,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이는 곧 피조물들의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추한 인간이 예수 믿어 본래의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되찾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와 같이 창조 본래의 모습대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또한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호칭하실 때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를 즐겨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했습니다.(요14:12) 이 말은 제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롤 따르는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생활이 곧 성도들의 사명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삶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성령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14:8-10에 보면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했고, 이어서 16-17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성령을 충만히 덧입게 되면 성도들 또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은 곧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삶이며 또한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1.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라.
엡2:10에“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창조하셨고,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그분의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속하사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 개개인에 대한 창조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각 개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신 이유는 오직 그분의 영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신자들에게 계시하시고, 바로 각 신자들이 그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그분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께서 각 신자들을 창조하신 목적과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힘으로 그분께서 뜻하시는 바를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삶을 사는 많은 신자들이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들을 향하여“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엡4:30)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성도들의 대 부분은 자기중심적이고, 세상 적인 생활을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격이시므로 신자들의 말과 행동이 성령님을 근심케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일은 곧 엡4:25-31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성도들이 거짓말, 화, 도둑질, 부패한 대화, 원한, 분노, 진노, 비방하는 것들은 성도들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또 잠언 6:16-17 에서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여섯 일곱 가지가 있는 데, 그것은 곧 교만한 눈빛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피와 흘리는 손과 사악한 꾀를 꾸미는 마음과 신속히 해악으로 치닫는 발과 거짓들을 말하는 거짓 증인과 형제 사이에 불화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는 잘못 된 말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첩경입니다. 왜냐면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눅6:45에서 "사람의 입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함이니라."고 지적하셨고, 잠23:7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한 대로 그 사람도 그러한즉"이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들이 얘기하는 대화는 우리 자신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며,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알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말이나 대화나 행동을 성령님께 큰 슬픔의 고통을 안겨다 주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서로 사랑하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형제간에 미움을 조장하거나 형제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은 감사케 하는 영입니다. 그러나 감사 대신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은혜를 발로 걷어 내는 격입니다. 성령은 성도들 간에 격려와 칭찬을 하도록 감동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비방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말씀에 순종하게 하고 아멘하게 합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불순종을 합리화하며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성령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며 기도하게 하는 영입니다. 그러나 잠잠히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인간적인 계산과 생각으로 주의 일을 하면 시험에 듭니다. 성령은 형제의 허물을 덮으려 하나 사단은 사람들의 약점을 드러내고 흉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령은 모든 성도가 하나 되는 것을 기뻐하지만, 끼리끼리 뭉쳐서 당을 짓고 다툼을 조장하는 것은 성령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합니다. 우리가 만일 성령을 계속 근심케 하면 그 근심은 괴로움으로 변하게 되어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사63:10에 보니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성령을 근심케 하고 괴롭게 하는 뿌리는 계속적인 반항 혹은 불순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런 반역은 불평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훈계와 경고를 위해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고도 악을 수행하면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성령님께서는 오래 참으심을 통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의 종을 통해 가르치고 거듭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를 무시하여 성령을 괴롭게 하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근심케 해서는 안 되며, 더더욱 그분을 격분하실 만큼 상심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고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집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일반적으로 성령의 내주와 성령 충만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고전13:3) 그러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이 충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도답게 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를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영위하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한번만 받는 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부음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고 했습니다.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6-17)고 했고,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 5:32)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은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있을 때 까지 약속의 말씀만 믿고 일심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1:14).
⑵ 고귀한 것으로 알고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행4:31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고 했고, 눅 11:13에서는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령을 가장 귀한 것으로 알고 최우선적으로 최선을 다해 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귀한 것은 귀한 것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만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7: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귀히 여기시는 것이 성령입니다. 진주와 보석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을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간구해야 하고 또 받은 선물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특별히 행8:17-20에 보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시몬은 자기 자랑,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성령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⑶ 회개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성령은 거룩합니다. 그리므로 깨끗하지 못한 자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십자가 보혈의 피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⑷ 여러 가지 환경과 방법을 통해 주십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찬양하는 가운데 성령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기 전에 늘 모여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 눅 24:53.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 왕하 3:15). 그렇습니다. 찬양의 회복은 성령을 초대하는 일이 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찬양할 때 성령이 임하여 옥터가 움직이고 착고가 풀어졌습니다. 이 뿐 아니라 초대 교회 당시 사도들은 성도들이 성령받기를 기도했고, 이 안수 기도 중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특별히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는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을 받앗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10:44)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일 날 말씀 듣고 아멘 하는 가운데 성령을 충만히 받기를 소망하며 지금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일의 가족 여러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는 성도가 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큰 권능과 힘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주님 말씀처럼 주님께서 하신일 뿐 아니라 주님께서 행하신 일 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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