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5일 금요일

⑶ 장자는 꿈이 크다. 비전(VISION)이 확실하다.


⑶ 장자는 꿈이 크다. 비전(VISION)이 확실하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이 비전(VISION)입니다. 비전이라는 말의 정의는 생각하는 측면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으나, 성경적 관점에서 보는 비전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계획이 나의 꿈과 나의 소망으로 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는 기도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이 계획을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지 않고 사람을 통하여 이뤄 가신다. 그러나 이무나 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지 않고 오직 비전을 가진 자 즉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계획이 자기 자신을 통하여 이뤄지기를 바라며 이일을 최 우선순위에 둔 사람을 통해 이루신다.

성경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고전10;31)는 말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는 말씀은 다 이 비전에 주안점을 둔 말씀이다. 그러므로 비전이 잇는 사람을 이 비전을 사명으로 여기며 산다. 비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명으로 여기지 않는 다면 이것은 비전이 아니다. 사명은 목숨 걸고 이루어 내야 하는 꿈, 먹는 이유, 잠자는 이유, 공부하는 이유, 돈 버는 이유가 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선용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곧 비전의 사람이다.

이 비전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시거나, 꿈이나 환상을 통해 보여주시는 경우도 있고, 사람을 통해 말씀해 주시는 경우도 있으며, 기도를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주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허락해 주신다. 그러므로 비전을 받고, 비전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배우고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듣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별히 우리 교회의 비전은 하나님께 영광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온유한 교회! 중미 선교의 허브가 되고 복음으로 세계를 먹이는 교회! 괴로움과 방황, 가난과 질병 부모 잃고 못 배워 눈물 흘리는 이웃과 형제의 필요를 채워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교회! 인재 양성을 통해 더 복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교회! 이다. 이를 위한 기도하는 일을 중단하지 말아야 하겠다.

성경에 보니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비전의 사람들이었다. 노아는 말씀을 통해 홍수에 대한 경고를 듣고 평생을 방주는 만드는 일에 헌신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나아갔고, 야곱은 장자의 비전을 어머니를 통해서 듣고 평생을 걸고 장자의 명분을 얻고 이를 유지하는데 헌신했다. 요셉은 두 번의 꿈을 통해 장자의 비전을 가지고 이 비전이 이루어 질 때 까지 종으로, 죄수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했다. 그래서 시105:17-19에서는 “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라고 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는 인도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1793년 영국을 떠난 이래 아내와 자녀를 먼저 하나님께 보내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평생 인도에 살며 인도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도록 헌신했다. 아도니람 저드슨은 미얀마 선교의 비점을 가지고 그곳에서 순교를 당했다. 요한 웨슬리는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죽는 순간까지 순회 설교를 중단하지 않았다. 죠지뮬러는 고아의 아버지로 평생을 살았으며, 방지일목사님은 한국인 최초로 중국 선교사가 되어 헌신했다. 몇 년 전 소천하신 한국유리 회장 최태섭장로는 기독교 윤리에 입각한 회사 운영을 비전삼고 회사를 운영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전을 가지고 비전을 이루며 멋있게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비전을 받는 것과 비전을 소유한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비전을 이루는 과정은 많은 땀과 눈물, 심지어 목숨까지 바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는 비전 즉 땅 끝까지 복음 증거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았고, 모세는 출애굽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평생 광야에서 살았다. 이 세상은 세상 풍조에 밀려 사는 군중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가진 소수,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하나님의 비저너리들에 의해 유지되고 발전된다. 장자가 되라! 비저너리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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