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일 목요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본문/사43:1-21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대략 7가지로 요약 될 수 있습니다. ①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43:7-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고전10:31-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골1:16-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②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도록 (사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③ 하나님과의 교제하며 살도록 (창1:27-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요15: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15:5-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일1:3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④주의 뜻대로 쓰시기 위해 (잠16:4-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⑤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⑥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창1:26,28-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⑦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사65:18-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살전5:16-항상 기뻐하라.)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이사야 43장만큼 그 관계를 명확하고 상세하게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사43:1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 짧은 구절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말과 구속하심, 지명하여 불러주심, 하나님의 소유 삼으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사43:7에 보면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우리를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답게 기르시고 만드십니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가득 담긴 이 말씀이 선포 될 당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소망도 없이 자포자기, 즉 ‘될 되로 되라.’식의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사43:22에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라고 했습니다. 또 23절에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싫어해서 하나님과 너무 멀리 떨어 져 있는 상태입니다. 근묵지흑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 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전에 제가 한번 남극과 북극에 항상 꽁꽁얼어 있는 이유가 저주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태양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무력에서 능력으로, 좌절에서 소망으로 변화됩니다. 모세가 능력 있게 살았던 이유도 하나님과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4:8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백성이 찬양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려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지 왜 자꾸만 기도하라, 기도하라.’해서 괴롭게 하느냐고 불평했습니다. 잔소리로 여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잔소리로 여겨지시고, ‘기도하라.’는 말이 여러분을 괴롭히는 말로 들리십니까?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은혜를 계속 공급받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님을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귀찮게 여기고 괴롭게 여기는 배은망덕한 백성들을 버리실 만도 한데 하나님의 짝사랑은 계속되고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짝사랑의 강도는 한층 강해지고 있습니다. 본문 19-20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 일'이란, 전혀 새로운 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생각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일'을 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일이 두 가지로 나오는 데 하나는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새 일을 예비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것이 보통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이 아버지는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십니다.(렘33:2) 이 아버지는 바다에 길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홍해 바다와 애굽 군대에 포위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뒤에는 애굽 군대가 둘러 진치고 있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막혀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야! 이거 다리를 놓아야 되겠다. 아니면 배를 구해야 되겠다. 아니면 헤엄쳐 건너가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안 되면 싸우다가 죽던지, 아니면 항복하던지, 인간의 생각은 고작 그런 정도의 생각밖에 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출14:10-11)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절망적인 절규인 것입니다. 아무도 드넓은 바다에 넘실거리는 물이 좌우로 갈라져 벽이 되고 그 사이에 길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길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사55:8)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만 높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방법도 우리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하나님께는 막다른 골목에도 길이 있고, 동서남북이 막혀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 안에는 피할 길이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하나님 안에는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 할 수도, 상상 할 수도 없는 생각이 있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에게 새 은혜, 새 일, 새 축복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예비하신 새 은혜를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까? 모세는 앞뒤가 꽉 막힌 홍해 앞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모세가 어떻게 할 때 바다 길이 열렸습니까? 기도했을 때입니다. 그래서 렘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시50:15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고, 시46:5은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던 바로와 애굽의 군대가 새벽에 모두 수장되었고, 철옹성 여리고도 새벽에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새벽에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새벽에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잘 들어 주십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가 만들었던 성막의 또 다른 이름은 회막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텐트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20:2에서는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신다.”고 했고, 예수님은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막 11:17) 성전에서 새벽에 기도하면 사막에도 샘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기도하면 사막도 꽃동산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크고 비밀한 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소망의 씨를 심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시고 게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새 일, 크고 비밀한 일을 우리를 위해 시작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약1;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히11:1)이므로
① 원하는 모습을 그리며 기도합니다.
마음속에 원하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머리와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상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커다란 그릇을 마련한 사람에게만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19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하나님은 우리 삶을 통해 새로운 일을 행하시기 위해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단지 하나의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 말은 곧 “마음에 충분한 그릇을 준비해 놓았느냐? 성장을 믿느냐? 뛰어난 리더와 훌륭한 부모가 되리라 확신하느냐? 2007년에 네가 이루기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느냐?”는 반문입니다. 의심의 토양 위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과거야 어쨌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능히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② 하나님은 기대한 만큼의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대 수준을 높여 기도합니다. 우리 인생은 꿈보다는 '기대'를 따라갑니다. 기대한 만큼 이룹니다. 긍정적 생각을 품은 인생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은 꼬이게 마련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영 퍼센트에 가깝습니다. 늘 똑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항상 제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 9:29)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기대한 만큼 주겠다.”는 뜻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새벽에 기도 할 때 소원은 이루집니다.
③ 크게 입술로 외치며 기도하라.
잠18:20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고 했고, 롬10:10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마12:37에서는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이 입과 말의 능력을 알기에 항상 우리의 입에 불평과 불만을 집어넣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성도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정적인 말, 불평과 원망의 말, 불신앙의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면 마음에 기대하는 대로 말한 대로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항상 승리와 풍요로움, 축복과 희망을 생각하며 '믿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축복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 올 때, 소망의 하나님께 함으로서 힘을 얻을 때 모든 어두움의 그늘은 사라지게 됩니다. 특별히 마귀는 기도를 방해합니다. 엉뚱한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졸리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새 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크고 비밀한 일을 소원하십니까? 기도하면 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출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이 말씀과 같이 저와 여러분은 지난 한해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고, 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모여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온갖 좋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해 놓의셨습니다.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댓글 없음: